서밋대담2 +이행파티 | 공유지와 이행기 공간

석유가 없는 ‘석유 비축기지,’ 그 버려진 땅에서 7년간 전환을 하고 있던 부족이 있습니다. ‘비빌기지’라는 이름의 ‘이행기 공간'에서 자기 삶의 생산능력과 공동체가 협력하며 삶을 일구는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비빌기지에서 활동하는 문화로놀이짱 안연정

 

 

 

문화로놀이짱과 ‘공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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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월드컵경기장 서문 맞은편, 마포석유비축기지 공원화사업 공사장 내 자리한 비빌기지



 

지금부터 십년 전으로 거슬러갑니다.

2006년 홍대앞 주민광장에서 열린 시장과 홍대앞 거리를 중심으로 조성되었던 ‘공터’ 활용이 오늘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당시 제게 홍대 앞은 마을이자 학교였습니다. 삶의 방식과 태도를 가르치는 선생은 없었지만 거리의 분위기를 만든 사람들, 공간들 그리고 활동들을 통해 다양한 삶의 양식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길들이 만나는 곳에 생겨난 작은 공터들에서 우리는 다르게 살기를 실험할 수 있었습니다.

 

소비를 통해 공급된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획일화된 삶을 경쟁하며 사는 이십 대 삶이 불안했습니다. 우리는 ‘공터’에서 ‘시장’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돈’에 의해 사라진 꿈, 획일화된 꿈,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다시 찾는 ‘시장’을. 경쟁력 있는 상품(작품)을 유통하는 시장이 아닌 우리를 가로막는 벽들을 균열 내는 시장을 상상했습니다. 서로의 삶을 지지하며, ‘소비’로 결정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업으로서의 생산이 아니더라도 자기 삶의 생산능력이 필요하다는 것, 이러한 것들이 결국 자립과 자존의 문제와 연결된다는 점을 ‘공터’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공터’에서 경험과 이야기가 축적되는 ‘거점’으로

 

2010년, 앞선 공터의 경험을 넘어 좀 더 일상적이고 공동의 자원이 될 수 있는 ‘거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공간을 비우고, 채우는 반복된 활동의 피로감도 이유였지만, 좀 더 경험과 이야기가 축적되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가난한 우리에게 독립적인 ‘공공공간’을 만드는 일은 커다란 숙제였습니다. ‘00시장’, ‘00창고’와 ‘00공방’과 같은 공유시스템이 자리 잡을 수 있는 ‘빈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마포석유비축기지’를 발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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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석유비축기지 - 서울 한가운데 10여 년간 숨어 있던 산업시대의 유물.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인근에 석유 저장탱크 5개가 있다. 1976년 ‘난지도 쓰레기산’에 땅을 파고 매설된 이 시설은 2000년 월드컵 경기장 건립을 위해 폐쇄됐다.


 

 

마포석유비축기지는 90년대 후반까지 국가적 위험을 대비해 ‘석유’를 비축해 둔 산업시설이자 군사시설입니다. 마포구 성산동 매봉산 중턱에는 거대한 석유탱크 5동이 묻혀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바로 옆에 월드컵경기장이 조성되며 석유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석유 깡통은 산속에 그대로 남겨졌습니다. 석유탱크가 숨어있는 매봉산 13,000여평 대지에는 작은 관리사무소와 유류 보급소 그리고 방공호와 같은 시설만 남았습니다. 이후 마포구는 이 공터를 대형버스주차장으로 운영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70평 정도의 벽돌건물을 발견하고 ‘행정 공백’이란 우연과 만나 비공식 점유 활동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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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였던 건물을 청소하고 전기와 수도, 통신 등을 다시 연결하며 시작한 유휴 공간 내 업사이클링 제작소 생활은 ‘다음 봄까지만 이곳에서’라는 결심과 달리 장기화되었습니다. 대체 부지를 찾지 못했고, 바로 쫓아낼 것이란 예측도 틀렸습니다. 13,000평 부지에 덩그러니 있는 70평 벽돌 공간에서, 놀 거리, 먹을거리, 살 거리 하나 없는 공간에 하루하루 적응하다 보니 새로운 봄이 몇 번 더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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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건물 옆 대지의 덩굴을 조금 더 걷어내고 녹이 슬어 뚫릴 것 같은 중고 컨테이너를 구입해서 공방과 모임 공간도 만들었습니다. 2011년부터는 ‘명랑에너지발전소’란 이름으로 ‘어른들을 위한 비밀기지’를 오픈하였습니다. 우리만의 힘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을 많이 의지하던 선배, 동료, 친구들에 의해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찾는 사람도 많아졌고, 활동도 다양해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7년간 500여 개의 프로그램과 10,000여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고 만났습니다.


 

어떤 도시재생?

석유탱크가 묻혀있는 산의 앞마당을 시민 스스로가 다시 조성한다면?

 

2014년 서울시는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마포석유비축기지’를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전환하는 국제설계공모를 시작했습니다. 시민아이디어공모에 이어 설계공모가 진행되었고, 당선작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쓰임이 멈춘 공간에 새로운 활용을 추진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이 땅에서 배운 잊혔던 감각들, 스스로 일구는 삶의 기술을 중심으로 도시의 틈새가 계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어마무시한 공간이 조성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아닌, 시민들이 스스로 생산하고, 조직하고, 주도하며, 조성하는 공유지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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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탱크가 묻혀있는 산의 앞마당을 시민들이 개발하면 좋겠다.’

 

‘화석연료시대의 종말과 함께 빈 석유탱크를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지혜들이 비축되는 공간으로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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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우리는 지난 몇십번의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며 도시기반시설이 부재한 빈터에서 ‘땅을 가꾸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산 넘어에 미디어시티가 보이고 월드컵 경기장의 화려한 불빛과 함성이 있는 도시 한복판에서 말입니다. 어느 것 하나 내 몸을 움직여 일구지 않으면 안 되는 공간에서 손노동과 몸노동을 통해 다르게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을 터득했습니다.

 

이 땅은 대안적 삶을 일구는 사람들의 생활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사업적 토대이기도 하지만, 효율만 따져선 답이 나오지 않는 이 생활을 함께하며 우리의 마음에는 ‘다른 삶을 꿈꾸는 이들과 만나고 서로 지지하는 토대’를 일구고 싶은 꿈이 싹텄습니다.

그리고 ‘제작소’를 통해 만난 친구, 동료, 선배들과 ‘재생’이란 이름으로 추진되는 위로부터의 개발을 반대하며, 시민들이 발의하고 운영하는 공원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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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전략은 활동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자입니다. 주차장 부지를 추가로 임대하고 ‘공터’였기에 가능했던 지난 시간의 실험을 이곳에서 다시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비빌기지 사람들은 2014년 11월부터 석유탱크 재생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까'를 논의하면서 ‘노동’을 근간에 둔 ‘생태문화적 활동’의 순환시스템을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매주 화요일에는 ‘마포석유비축기지 주차장 부지를 중심으로 함께 상상하고 제안하고 실행하는’ 모임을 운영하였습니다. 공터와 유휴공간이 갖는 의미에서 대안적 삶의 기반이 되는 지대를 상상하며 이동이 가능한 공간을 구상했습니다. 

 

또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함께 ‘생활기술융합제작소’란 이름의 이행기 공간도 조성하여, 이 활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주체들의 작업 공간, 모임 공간, 제작 공간, 재배 공간, 커뮤니티 부엌 등을 설계했습니다.


 

이행기 프로젝트란  

‘삶의 대안’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내는 일

 

그 사이 ‘마포석유비축기지 재생 및 공원화 사업’도 속도를 내면서 이행기 프로젝트가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단 한 번의 여름일지도 상상을 현실화시켜보자!’고 서로를 다독이며 매일매일 청소하고, 텃밭을 가꾸고, ‘비빌기지’ 공간 조성을 마무리하고, 공사를 기다리며 아쉽게 계절을 보냅니다. ‘비빌기지’ 활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친구들, 지역에서, 해외에서 이곳을 찾아주신 분들이 생각을 공유하고, 활동에 힘을 북돋워 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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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소와 부엌텃밭 그리고 생태도서관을 중심으로 비빌기지 사람들이 스스로 텃밭을 만들고, 작물을 키워 함께 먹으며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필요한 일들을 분담하고, 지속가능 기금을 모아 활동의 자립을 모색했습니다. 2주에 한 번씩은 ‘비빌기지 파티’라는 자치회의를 통해 활동을 기획하고, 자치력을 키워갑니다.

 

비빌기지 사람들을 잠시 소개하면 도시농부시장을 만드는 ‘마르쉐@’ 친구들과 ‘홍대텃밭다리’, ‘문래동 옥상텃밭’, 대륙텃밭을 만든 ‘자란다’, 비빌기지라는 커뮤니티 공간을 설계하고 조성한 ‘생활건축연구소’의 홍윤주, 비빌기지 라운드테이블을 이끌어준 미디어 아티스트 라지웅, 다양한 생활기술워크숍으로 작은 수공예학교를 열어주는 ‘소생공단’, 황량한 공사현장을 축제현장으로 만들어 주는 인디레이블 ‘카바레사운드’, 부엌텃밭의 활력을 만들어주는 ‘수카라’ 김수향, 시민 주도 활동에 꼭 필요한 제작소를 운영하는 달바와 ‘문화로놀이짱’ 그리고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파티’의 김건태 선생과 학생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난 2년간 이곳에서 장터, 워크숍, 토크 이벤트, 파티, 텃밭 활동을 시민들과 함께하며 ‘이행기 공간’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설득해왔습니다.

 

비빌기지 활동을 경험하며,

현대건축과 자본 중심의 부동산 시장과 긴장 관계를 가지고 틈새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이행기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이제 경제성장보다 중요한 가치는 ‘삶의 대안’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공간을 조성하는 과정도 시민주도로 결정하고 공공적 차원의 합의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일구고 싶은 자리, 일굴 수 있는 자리로서의 '빈 공간'을 남겨놓고, 삶의 방식을 전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가 배우고 확산할 수 있는 토대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삶을 상상하고 이행하면서, 스스로 삶을 조직하려는 노력이 모여  새로운 기반을 만드는 공간. 전환하는 삶을 위한 이행 기지들이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더 보기 - 조한혜정 칼럼 "탈석유 시대 비축기지와 비빌 기지"

 

 

 


 

[서밋대담2 +이행파티] 공유지와 이행기 공간

10월 15일 (토) 14:00~21:00

 

서밋 대담2 | 14:00~16:00 @하자센터 본관 2층 999클럽

‘이행기 공간’이란 기존 방식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을 인지한 시 당국이 더불어 살아가려는 시민들에게 도시재생의 실험을 맡긴 실험적 공간을 말합니다. 근대문명의 원동력인 석유를 비축하던 ‘마포석유비축기지'가 GMO의 대안이 될 토종 씨앗을 비축하는 생태-문화 기지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이행파티 | 17:00-21:00 @비빌기지(마포구 증산로 87)

서밋 둘째 날 저녁, 다 같이 비빌기지로 옮겨가 좋은 기운 받으며 축제를 열려고 합니다.

안연정 (문화로놀이짱)

업사이클링 제작소 문화로놀이짱의 구성원이자, 마포석유비축기지 내 '비빌기지'란 이행기 공간의 오래된 주민이다. 나와 연결되어 있는 에너지들을 느끼고 활용하며 살고파 잃어버린 감각들을 되찾는 일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