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밋 대담 2 | 공유지와 이행기 공간: ‘공공공간’의 개념과 이행기적 사용의 예

무차별적 난개발로 ‘공유지’를 소비적 장소로 변환시키는 도시. 지속가능한 삶, 시민적 창의활동의 공유지대를 상상해보기 위해서 다소 생소한 이행기 공간의 개념과 사례들을 먼저 들어봅니다.

미학/연세대 겸임교수 임정희

 

 

 

도시로 돌아온 삶, 공공공간의 개방성이 초대한 활력

 

대체 주차미터기는 왜 뜨개 모자를 쓰게 되었을까? 옥외광고 기둥에 두른 목도리는 무엇에 필요한 걸까? 버스정거장에 매달려 흔들리는 저 빨간색 그네도 수상하다. 자동차 소음 가득한 로터리 한가운데 교통섬에는 나무팔레트로 만들어진 소파 두 개가 버젓이 놓여있고. 조만간 그 옆에는 버려진 타이어들이 자리를 잡을지도 모르지. 건너편 보도에는 이미 타이어 몇 개가 부엽토로 채워진 채 놓여 있다. 배추가 그 안에서 순진한 모습으로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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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오염을 반대하는 뜨개행동, 제노아/이탈리아


 

 

이 모든 것을 보며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어차피 다음날이면 환경미화원들에 의해 치워져 소파며 그네도 더는 없을 수도 있다. 이것들은 일시적인 현상들일 뿐이어서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 거대한 변화의 징표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들은 어떤 전환을, 도시 변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현재의 시점을 사는 삶, 가능성으로 가득하며 일상을 유랑하는 흥미로운 삶이 보행로, 광장, 사거리, 주차장 위, 그리고 고가도로 아래를 점령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귀환이지만 이 모든 것이 착각이 아니라면,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는 도시문화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21세기에 놀랍게도 도시 공간들이 여전히 대체될 수 없는 가치들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사실 정확히 어떤 것이 대체 불가능한 가치인지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예를 들면 공공성과 개방성에의 욕구가 그러하다. 도시로 귀환한 삶, 또는 삶이 돌아온 도시의 밑바탕에는 ‘공공공간’이 무엇이고 어떤 공간일 수 있는가의 가능성에 대한 변화된 인식과 자각이 깔려있다. 많은 사람은 도시의 ‘공공공간’을 확정되고 형태가 고정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느낀다. 변화를 갈망하는 새로운 시작점을 위한 논란의 중심에 ‘공공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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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폭격’ - ‘의자폭격Chair Bombing’은 거리에 휴식을 제공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신속하고, 쉽고,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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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릴라 뜨개질, ‘양털폭탄’ - 게릴라 뜨개질로 알려진 ‘양털폭탄Yarn Bombing’은 허가 없이 거리의 공공공간이나 시설물, 사물에 실을 떠서 씌우는 일을 말한다.


 

> 더 보기 - 문화연대 뉴스레터 19호 ‘도시 공간의 유쾌한 전유를 위한 제작’


 

 

여러 도시에서 쇼핑몰 업체들은 한때 모두의 공공장소였던 땅을 차지하고서 그들의 규칙 아래 움직이는 소비공간들로 탈바꿈시켰다. 지자체들도 그 모델을 따라 도로와 광장들을 반(半) 사유적인 사무 지역으로 운영되도록 하거나, 공공건물들을 최고낙찰가에 팔아넘기는 경우가 흔해졌다.

 

그 밖에도 늘어나는 감시용 카메라의 수나 게이티드 커뮤니티(출입이 제한된 폐쇄적인 주거-생활구역)에 대한 높아지는 관심, 그리고 급속히 늘고 있는 초대형 광고판들은 ‘공공공간’들이 이전보다 점점 더 통제되고 제한되며 사적인 의도에 지배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렇게 닥치는 대로 손을 뻗으려는 사유화와 극도의 개인화에 맞서 ‘공공공간’에의 참여와 탈환, 그리고 새로운 가치 매김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도시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도시를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하려고.


 

움직임과 과정으로부터, 관계의 집합으로서 만들어지는 ‘공공공간’

 

근대에서 공간은 기하학적으로 정확히 묘사 가능하며 최대한의 객관성에 기반해 설계될 수 있고, 확실한 경계로 닫힌 하나의 ‘통’처럼 간주되었다면, 탈근대의 공간관은 말랑말랑하고 불확정적이다. 공간은 ‘이미 그러한 것’이라기보다는 움직임과 과정으로부터 만들어진다. ‘관계의 집합’으로서, 결국 공간은 공간을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공간을 내화시켜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지각과 그 속에서의 행위들이 이루어지면서 공간은 비로소 정의된다.

 

실제로 ‘공공공간’은 사람들이 그 공간을 열린 것으로 지각할 때, 미완성적이고 미완결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만 ‘공공공간’으로서의 정의가 가능하다. 개인들이 그 공간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부분적으로나마, 그리고 순간적으로라도 완성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의 행위가 통제되지 않으면서 이렇게도 행동할 수 있고, 저렇게도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될 때. 그 행위들로 인해 공간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을 때. 크게 노래를 부르며 다리를 건너거나, 한 다리로 뛰면서 계단을 오르거나, 거꾸로 광장에 걸어 들어가는 행위들이 한 공간을 순간적으로 다른 공간으로 만든다.

 

그렇게 개인들이 공간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경험할 때, 그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익숙하지 않음’의 형태들은 공공적인 성격의 공간들에서만 가능하다. ‘공공공간’의 개방성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그 열린 공간을 실험해보도록 초대하기 때문이다.


 

이행기적 사용의 예

 

자유와 제약, 그리고 사적인 이해관계와 공공적인 합의의 서로 부딪치는 갈등관계 속에 도시가 놓여있다. 공공공간이 과도하게 통제되며 특정 권력 아래에 지배되고 있다고 보는, ‘도시에 대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활동가 중에는 현 상황을 ‘싸움’이라고, 혹은 ‘전쟁’이라고까지 여기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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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리 르페브르가 1968년에 출간한 <도시에 대한 권리> 표지 :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s to the City)는 도시 공간에 대한 도시 거주자의 권리를 의미한다. ‘도시권’은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앙리 르페브르의 저서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제임스 홀스턴의 ‘도시 시민권(urban citizenship)’ 개념으로 심화되었다.


 

준 군사적인 어휘들이 붙은 그들의 활동이 특히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도로 위에 페인트로 새로운 횡단보도를 그리는 것은 ‘게릴라 횡단보도Guerilla Crosswalks’, 인터넷에 띄워진 표지판을 가로등에 박스테이프로 부착시키는 행위는 ‘게릴라 길 찾기Guerilla Wayfinding’라 불린다. 버스정거장이나 그 외의 장소에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해 그네를 매달아놓는 것은 ‘게릴라 그네Guerilla Swings’이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여러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특정 지하철 한 칸을 점거하고 파티를 열도록 선동하는 사람들은 ‘공간 납치범Space Hijackers’이다.

낙후된 지역의 야성적으로 자라는 잡초들을 스프레이로 색칠해 미적인 효과를 내거나 방치되는 현상을 고발하는 행위는 ‘잡초 폭격Weed Bombing’이고, 허가되지 않은 포스터나 스티커를 통해 저항하도록 종용하는 것은 ‘그래픽 전투Graphic Warfare’로 불린다. 그리고 씨앗폭탄을 무자비하게 투척해 차가운 도로변일지라도 한두 개의 꽃이 피어나도록 하는 ‘게릴라 가드닝Guerilla Gardening’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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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릴라 횡단보도(Guerilla Crosswalks)



 

그러나 대부분의 활동이 실제로 습격하려 하거나 점거를 하려는 의도로 군사적 어휘를 사용한다기보다는 위장술로 이용한다는 데에 가깝다. 특히 정치적인 목표가 아닌 문화적이거나 사회적인 목적을 가지는 이들에게 ‘게릴라’라는 단어는 행위의 자립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인다. 그들은 정부와 관계되어 조종되지 않으며, 재정적인 이해관계에 의해서 휘둘리지 않고, 열린 공간에서 행동하는 데에 있어 자유롭다. 꼭 형법적으로 고소당할 만한 일들을 하는 것은 아닐지언정 금지된 일을 한다는 스릴감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미국에는 변화하는 협력적인 공간관의 성격을 정의하기 위해 여러 서로 다른 개념들이 통용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전략적인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을, 다른 이들은 ‘DIY-어바니즘Do-It-Yourself-urbanism’을 사용한다. ‘팝업-어바니즘Pop-up-urbanism’이나 ‘LQC-어바니즘’(‘더 가벼운, 빠른, 저렴한’의 약자)과 같은 개념들은 작은 영향력을 미치고자 함을 짚어낸다. 어느 것도 지속적이지 않고, 모든 것은 유동적이라는 교의가 여기서도 보인다.

 

어떤 것을 확정 짓거나 교착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한 해 여름 동안 마대자루나 쓰임이 없어져 버린 통에 텃밭을 일구고는 다음 해 다시금 이동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한다. 동시에 이행기적인 행위들이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를 희망한다. 

2012년 초 발티모어에서 싸구려 페인트로 칠해졌던 게릴라 횡단보도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그곳에 횡단보도가 생기기를 오랫동안 바라왔다. 이 게릴라 횡단보도는 공공기관에 의해서 빠르게 제거되었지만, 그 후 긴 찬반 토론이 이어졌으며 결국에는 공식적으로 횡단보도가 설치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 시애틀에 계획된 비컨 식자재 숲Beacon Food Forest이나, 영국의 토드모든과 독일의 카셀, 민덴, 그리고 안데르나흐에 진행되는 프로젝트인 ‘먹을 수 있는 도시’는 야생적이고 일시적인 어반가드닝 운동의 텃밭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현장의 행정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협력적이고 체계적으로,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틈새 녹지와 쓰임이 없는 녹지들에 화초 대신 과실 덤불, 호박, 딸기, 콩, 잎채소, 또는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이는 도시를 생태적으로, 그리고 미적으로 장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개입이며, 도시 공간을 공동으로 결정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 더 보기 - 슬로워크 블로그 ‘텃밭을 공유하는 마을 ! 토드모든(Todmorden)’

 

 

| 팜 워허스트(Pam Warhurst) “우리의 주변 풍경을 어떻게 먹거리로 채울 수 있을까” (TED) - 토드모든은 2018년까지 마을의 모든 음식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단계까지 만드는 것을 목표로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가꿔나가고 있다. 

 

 

| ‘비컨 식자재 숲Beacon Food Forest’ 동영상 - 이 시애틀 프로젝트는 공유지를 식용 수목원으로 만들어 주민들이 과일·호박·견과류를 채취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숲은 도시공원에 인접한 28,300m²의 부지로, 주민들이 열매를 채취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으며, 과일 및 견과 나무, 호박밭, 그리고 수십 종의 장과류 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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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도심정원

 

 

 

대부분의 시민은 공유지나 이행기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들을 호기심과 견문으로 바라보며, 무조건적인 반대나 절대적인 안티를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 공간에 놀이적이고 구축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여 자신들에게 맞춰 공간을 변형시키고, 더 발전시켜나가고, 새로 정의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인터넷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촉매제 역할을 한다. 온라인상에서 필요한 정보들이 오고가며, 그동안 우려되어왔던 도시의 익명성이 탈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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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행기공간의 적정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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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의 이행기 공간



 

수많은 시민과 도시 공간과의 관계의 변화

 

기존의 것에 끼워 맞추고, 분리하고, 덧붙여나가는, 즉 리사이클링, 재연, 재생산, 그리고 회복, 리믹스, 추출, 리메이크를 구사하는 예술가들. 열린 결말을 가진 프로세스가 되어 많은 것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거나, 새로운 필요들이 슬며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쓰임을 다한 건물들의 이행기적 사용을 주도하는 건축가들. 그리고 도시운동 활동가들이 관계변화를 먼저 경험하고 시민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추정일 것이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의 전환’의 한 단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공공간’에 대해서 말할 때 곧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나누는 전문가들과 달리, 수많은 시민은 이분화되지 않은 삶, ‘넘나듦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실제는 많은 단계의 공공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개인을 보호하는 공간들과 공공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공간들을 구별하는 능력을 이미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창의서밋의 두 번째 대담 서밋대담2 | 공유지와 이행기 공간에서 '공공공간'에 대한 개념과 해외의 다양한 이행기 사례를 이야기해주실 연세대 겸임교수 임정희님의 원고의 요약본입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더 보기 - 전문 보기

 

 

 

[서밋대담2] 공유지와 이행기 공간

10월 15일 (토) 14:00~16:00 @하자센터 본관 2층 999클럽

 

‘이행기 공간’이란 기존 방식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을 인지한 시 당국이 더불어 살아가려는 시민들에게 도시재생의 실험을 맡긴 실험적 공간을 말합니다. 근대문명의 원동력인 석유를 비축하던 ‘마포석유비축기지'가 GMO의 대안이 될 토종 씨앗을 비축하는 생태-문화 기지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 구성: <발표1> 해외의 이행기 공간에 대한 개념과 현황 

<발표2> 한국에서 이행기 공간; 석유비축기지-비빌기지-문화비축기지 

<토론> 전환 이후의 공간, '비축기지'에 대한 상상과 의견 나누기 

- 발표: 임정희(연세대 겸임교수 / 미학)

안연정(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 대표)

- 대담자: 조한혜정(연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하자센터장)

임정희(연세대 겸임교수 / 미학)

안연정(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 대표)

천호균(쌈지농부 대표)

임정희 (미학/연세대 겸임교수)

미학(예술철학)과 미술사를 전공하였고, 대학에서의 강의와 시민단체를 통한 문화운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미와 예술이 인간과 세계의 만남을 때론 더 넓게 더 깊게 매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고, 일상의 차원에서 이런 가능성의 실현을 실천적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배제와 분리 없는, '이다-아니다'의 이중동시성이 나와 우리의 공통감각으로 자리 잡기를 꿈꾸면서.